한국으로 돌아와 자리잡은 그 해, 나는 아빠가 되었고 시간은 가속하여 눈깜짝할 새 흐른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아내의 배에 손을 얹고 아빠 목소리를 들려주겠다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소리 내 읽던 저녁, 한여름 무더위에 무사히 태어난 아기를 처음 품에 안고 떨어뜨릴세라 긴장하던 순간, 아기를 처음 차에 태우고 부들부들 떨며 운전하던 순간. 아이의 탄생은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임팩트로 남았다.
모든게 변했다. 아이가 집에 올때까지만 해도, 일이 제일 중요했다. 만삭의 아내가 잠에 들기 힘들어할 때에도 저녁에 잔업했고, 출산 휴가때에도 틈틈히 노트북을 열어 로그를 들여다봤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니면서 부산에 거주하는 나”에게 일종의 사랑을 느끼면서 팀원들에게도 이를 정당화 할 수 있을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주 2~3회는 사무실 출퇴근하는 팀원들 사이에서 full remote work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자랑스러웠던 블로그도 멈췄다. 여유가 없었기도 했지만, 블로그를 가꾸는 것보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면서 증명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고 느꼈다. 전부 과거형이지만, 그 당시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말 그대로 “꿈만 같던” 1년 간의 세계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보낸 2023년, 2024년, 2025년. 총 3년간의 일과 삶(육아)에 대한 회고를 하나의 포스트에 작성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생각하며.
연도별 회고
2023년
- 아내의 뱃속에 아기가 생겼다.
- 운좋게 부산에 우리 형편보다 훨씬 좋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이사했다.
- 집에 근사한 remote 업무 공간이 생겼다. 모니터의 개수만큼 능률도 올라간다.
- embedding search 방식의 문서 검색 모델 개발 (contrastive learning) 및 서비스 탑재
- 여러 노드에 분산된 26개 gpu를 묶어서 학습. 당시 SOTA 레벨의 문서 검색 성능 달성
- 베타 서비스 출시
- 아이가 태어나고, 잠도 못자고 정신적으로 점차 피폐해지는 와중, 100일의 기적을 겪고 숨을 돌릴만 하니 한 해 종료.
- 그 사이에 서비스는 큰 문제 없이 베타 완료.
2024년
- 서비스 정식 출시.
- 업무 협업 도구를 Notion에서 Linear로 변경.
- 프론티어 랩들의 LLM 성능과 속도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LLM과의 차별화가 더욱 필요해짐.
- 적극적으로 AI 개발자 리크루팅. 하지만 소규모 스타트업으로서는 기회가 적음.
- 블로그를 뒤져 명석한 AI 개발자에게 컨텍하고, 우여곡절 끝에 모셔와서 협업.
- 유사 문서 검색을 위한 Generative 모델 실험
- 특허 모델을 문단 단위 매핑으로 전환 실험 → 2억여개의 1024 dim 임베딩을 제한된 서버 자원으로 서빙.
- 학습 데이터 구성 변경, 모델 사이즈를 키우고 SIMCSE 기반의 SOTA 모델 구현 → 모델 Compression.
- 평가 지표 개선 및 성능 소폭 향상. 서빙 효율 증대 성과 획득.
- 그동안 아이는 쑥쑥 성장. 아내는 한 해동안 Job을 늘리면서 시터 선생님에게 많이 의지.
2025년
- 마케팅 팀원이 추가되고, 매출이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시작함.
- AI, AI, AI. 계속해서 LLM이 모두의 업무 공간을 파고들고 있기에, 자사 AI 성능 확보는 더 많이 요구 됨.
- 문단 단위 매핑 전환 실험 재개. 하드웨어 자원이 약간 부족하여 실제 서비스 적용 실패.
- 학습 데이터 추가 확보 및 fine tune으로 문서 모델 성능 소폭 향상
- 특허 문장 비교 모델 개선 배포. triton inference server를 이용한 추론 최적화.
- 6월부터 1년간 육아 휴직
- 휴직하는 동안 다양한 생산 활동 해볼 계획
- flutter로 어플리케이션 3종 구현 후 출시
- cursor, claude code 에 월 100달러씩 소비하며 개발자 시장의 변화를 체감
- 아내의 둘째 임신 🤰🏻
요즘 생각
- 개발자로서
- 흔들리는 시장
- AI가 송두리째 바꾸는 개발 문화
- 올해 3월 이전까지는 chatGPT, grok 같은 web chat기반의 LLM을 코딩에 이용했다. 사실상 구글 검색을 더 쉽게하는 느낌으로 이용했던 것 같다.
- 3월쯔음 처음 cursor를 접했다. 코드 베이스를 직접 검토하고, 수정까지 자동화하는 composer를 앞세운 cursor의 임팩트는 강력했다.
- 8월부터는 claude code를 사용하고 있다. Agent들의 유기적인 협업과 결과물의 퀄리티에 더더욱 놀라고 있다.
- 1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이제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매우 저렴한 스킬이되었다.
- 소프트웨어 구조 설계도 마찬가지.
- 프로덕션 레벨로 가는 last mile만이 실질적으로 남아있는 “가치 업무”인데, 이마저도 언제 침범당할지 모른다.
- 아이디어만 있다면 세부 기획하고, 설계하고, 구현하고, 배포하는 모든 과정에 1인 초과 인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
- AI가 송두리째 바꾸는 개발 문화
-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 비즈니스 마인드를 탑재하고, 거의 ‘솔로’로도 가치(매출)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 거대한 파도 앞에서, 파도를 향해 돌진할 것이냐, 옆이나 뒤로 뱃머리를 돌릴 것이냐. 두려움에 눈 앞이 흐려지지만, 눈을 감고 생각하면 사실 정답은 선명하다.
- 육아 휴직 기간동안 1인으로 할 수 있는 최대 생산성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한다. 이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AI에게 일을 ‘잘’ 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 claude code의 harness 생태계에서 agent, skill을 적절히 조합하며 다양한 서비스 구현을 해볼 생각. (가능하면 아예 플랫폼까지?)
- 그래도 열심히 해왔다.

- 흔들리는 시장
- 아빠로서
- 우리 아이는 어떤 세상에 살 것인가?
- 지금 AI는 verifiable하며, 반발이 적은 필드에 먼저 진입한다. 역시, 효과적이고 강력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분야가 가장 먼저 얻어맞기 좋다. 개발 시장에는 사실상 사회적 보호(라이센스)가 없고, 데이터는 무진장 많다. 이 시장에는 먹거리도 많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보호 기제도 ‘비용’ 두 글자 앞에서는 결국 바스라진다. 20년 후에도 변호사가 존재할까? 변리사가 존재할까? 의사가 존재할까? 우리 사회가 진정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 결국 과거에 효과적이었던 대부분의 교육 방식은 미래에 무의미할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진행되어 있다. 모른체 할 뿐.
- 서울대학교 유기윤 교수 연구팀, ‘미래 도시 계급도’
- 이상과 현실의 괴리
-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 양질의 육아를 생각한다면 빠질 수 없는 명제이지만, 가장 어렵다. 생업을 하느라 바쁜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육아 자체의 체력 소모도 크다. (가끔은 그냥 일하고 싶다.)
- 함께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놀아도 발전적으로 놀아주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생긴다.
- 육아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최근에는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포기와 집중이다”라는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돈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포기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이 고민이 다시 ‘최소한의 업무 시간동안 최대한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agent system의 개발’으로 이끈다.
-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 둘째
- 아내의 임신 9주차. 둘째의 태명을 짓는것도 오래 걸렸다. 첫째만큼 관심을 가져주지 못하고 있다.
- 아내의 입덧이 매우 심한 탓에 육아 + 가사 + 개발 의 삼단 콤보가 체력을 갉아먹는다.
- 아내도, 둘째도. 출산까지 건강하게 있어주길 기도한다.
- 우리 아이는 어떤 세상에 살 것인가?
- 나로서
- ‘개발자 하용욱’, ‘아빠 하용욱’ 말고 그냥 ‘하용욱’에 대해 생각해본지 오래 된 것 같다.
- ‘나’가 희미해지는 것이 성장일까, 퇴보일까?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대상이 생기면서 나를 희생하는 숭고한 성장이라고 결론내버리련다. 하지만 이따금씩은 ‘나’도 챙길 수 있는게 더 멋진 삶인 것은 분명하다.
- 이 넓은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속, 코딱지만한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다. 이곳의 문화에 절여져 있다보면, ‘나도 내집마련을 해야’하고, ‘자산을 얼만큼 모아야’하고, 솔직히 주변 사람들의 처지를 계산하고 비교하고 야릇한 우월감을 느끼거나 비릿한 질투감을 느끼곤 한다. 육아 휴직으로 멈춰 있는 나의 상태에 조바심이 들때면, 되뇌인다. “넓게 보자.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Greedy하게 local optima에 빠지지 않고, global optima를 향하기 위한 고뇌가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뭔가 step size를 크게 가져가야할 것 같은 직감이 든다.
- 2021년 회고에서 언급했었지만, 다시 한번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계속 생각하다보면 어느샌가 그 비슷하게 되어 있을 것이라 믿고 나아가본다. 항상 앞으로 1~2년씩은 대략 길이 보였었는데, 지금 이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앞이 보이지 않는다. 6개월 후에 나는 무얼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