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천에서 카타르 도하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세번째 기내식으로 섭취한 느끼한 오믈렛이 문제 없이 소화되기를 희망하며, 쓰고 맛없는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9개월간의 세계여행을 출발하는 소회를 남기고자 한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말하시곤 했다.
“끝이 있는 어려움은 힘든게 아니다.”
옳은 말씀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질문했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과연 끝이 있는가?”
그 이전에, “나는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어려움의 정의를 “행복”과의 거리로 바꿔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행복한 상태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 행복해질거라고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행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에서 행복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결핍이자 슬픔이다.
그래서 바꾸어 생각해보았다. 무엇을 싫어하는가? 나는 정체되거나 무료한 일상이 가끔 싫다. 특히 변화가 예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싫어하는 것 같다. 3년 5년이 지나도 똑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은 강박같은 것이 조금 있다.
싫어하는 상태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퇴근하고 주말만을 기다리는 뻔한 일상을 벗어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게 이번 장기 여행이다. 여행 중에 에세이도 쓰면서 작가도 되어보고, 영상 만들면서 컨텐츠 크리에이터도 되어보면서 도전하는 시기. 물론 개발자로서의 본업도 충실히 할 예정이다.
오래된 이 여행 계획은 그동안 일상이 피곤하고 지칠때마다 그 어떤 자양강장제보다도 양질의 에너지를 주곤 했다.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그 모습은 특히 수백번 머릿속에서 이미 재생되어서 그런지, 어제 실제로 걸어들어갈 때는 그닥 흥분되지도 않을 정도였다.
2018년 아내와의 연애 시절, 처음 이 여행 계획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료한 인생에 변수를 줘보자!”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이제 그 변수가 드디어 시작된다. 기대되고 즐거운 한편, 이제 다녀오면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줄 새로운 깃발을 만들어야한단 부담감도 생겨난다.
사실 시간과 여행 경비보다 더 필요했던건 “용기”였다. 특히 나는 하나의 직장만 그만두면 비행기 표를 알아볼 수 있지만, 프리랜서인 아내는 거의 10개에 달하는 일거리를 그만두었다. 사직 의사를 열번 밝히면서 그녀가 가졌을 용기와 남편을 향한 믿음에 감사하다.
어제 인천 공항에 배웅해주러 온 동생이 말했다.
“결코 단 한 순간도 불행하지 말아라.”
멋지고 무거운 말이다. 지키도록 노력해야겠다.